책리뷰|내가 할 말을 내가 후회하지 않기로 함|말 대신 마음을 지키는 연습
‘말을 삼킨 나’에게 보내는 위로, 문상훈 산문집의 진심
『내가 할 말을 내가 후회하지 않기로 함』은 개그맨이자 방송작가로 활동해 온 문상훈이 펴낸 첫 번째 산문집이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으로 다가왔지만, 이 책에서는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속마음'을 조용히 풀어놓는다. 제목부터 벌써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 혹은 하고 나서 괜히 했다고 느꼈던 말. 우리 모두가 가슴에 한 번쯤 담아두었던 문장 같지 않은가.
책은 문상훈이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속 거리감, 상처를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등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그의 문장에는 ‘내 얘기 같다’는 공감의 힘이 있다. 문상훈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는지를 고백한다. 하지만 동시에, 침묵이 항상 미덕은 아니었음을,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이 더 아팠다는 것을 말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화가 나도 말하지 않고, 서운해도 그냥 넘기고, 오해를 받으면서도 해명을 포기한 적은 없었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종종 ‘참은 내가 잘못인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진다. 문상훈은 그런 우리에게 “이제는 너의 말을 네가 후회하지 않게 하라”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곧,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기도 하다.
글마다 자잘한 웃음이 섞여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유쾌함이라는 포장 속에 깊은 진심과 단단한 내면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솔직하게 마주 보게 한다.
무례하지 않게 말하는 법, 상처받지 않고 말하는 용기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말하기'에 대한 문상훈의 태도다. 그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피하려 했고, 침묵이 예의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참는다고, 침묵한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책의 중반부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가 조용해서, 착해서, 남을 배려해서 말을 안 했던 게 아니라, 그저 무서워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문장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 또한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서 많은 말을 삼켰지만, 사실은 갈등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말을 잘하는 법’보다 더 중요한 ‘말을 시작하는 법’을 알려준다.
문상훈은 말은 결국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라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에만 집중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아플까’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는 나의 감정을 보호하면서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언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의 글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는 것’을 멈추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그는 점점 자신의 중심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독자인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해방이고 치유인지 이 책은 진심으로 전해준다.
“이제는 나를 위해 말하고 싶습니다” 감정을 지키는 문장들
『내가 할 말을 내가 후회하지 않기로 함』은 누구에게든 필요한 감정의 언어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직장 동료에게. 늘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던 모든 순간에 이 책은 작고 단단한 문장이 되어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말하지 못했던 말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때 왜 말하지 못했을까, 그 말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지만 문상훈은 그 모든 지난 선택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당시의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라고 말해준다. 이 말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건 결국, 우리가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일상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장면들도 등장한다. 출근길 지하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친구의 문득 건넨 말, 누군가의 눈빛. 그 모든 순간들이 한 편의 이야기로, 하나의 위로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모든 글이 결국 말한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틀리지 않았어.”
『내가 할 말을 내가 후회하지 않기로 함』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여전히 삼키고 있는 이들에게, 말이란 얼마나 소중한 감정의 표현인지 알려준다. 그것은 목소리의 크기나 화려한 어휘와는 상관없다. 진심을 담은 한 줄이면 충분하다. 때로는 가장 조용한 말이,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책을 덮은 나는 다짐하게 된다. “이제는 나를 위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후회되지 않도록, 천천히, 단단하게 마음을 세우기로 한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