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이중 하나는 거짓말|13년의 침묵 끝에 꺼낸 마음의 균열
“서로 만나지 않고도 얽히는 삶”… 김애란, 고요한 격랑을 그리다
김애란이라는 이름은,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상징처럼 남아 있습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에 발표된 장편소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은 제목부터 무게감이 남다릅니다. 거짓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이중 중 하나만이 거짓이라면 나머지는 진실이란 말일까? 이처럼 단순한 문장에서 시작해 복잡한 감정의 미로로 우리를 끌고 가는 이 작품은, 세 명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자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서늘한 기록입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세 아이의 시선’으로 구성된 구조입니다. 이들은 서로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으면서도, 교묘히 얽히고 스며들며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균열을 남깁니다. 책을 읽는 내내 들리는 듯한 정적과, 그 정적 너머에 감춰진 내면의 격동은 김애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어우러져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아이’라는 존재를 통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가 ‘진짜’와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하게끔 이끕니다. 김애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너무 쉽게 확신했던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감정의 파편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말, 표정, 기억, 그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한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위로받는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비밀과 슬픔… 세 아이가 남긴 상처의 편린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의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작중 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비밀과 트라우마, 그리고 그들의 서사 구조입니다. 아이들은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누구에게도 온전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자체가 어른들의 세계와 다르게 아이들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말해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소설은 가정, 학교, 병원 등 익숙한 공간 안에서도 ‘안전함’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세 아이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편지, 누군가의 기억, 누군가의 고백을 통해 엮입니다. 김애란 작가는 그 과정에서 “보통”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끊임없이 흔듭니다. 가정이 있다고 해서 아이가 건강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야기는 단순히 슬픈 서사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김애란은 특유의 문체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잡아냅니다. 아이들이 ‘말하지 않는 것’ 속에 담긴 비명을, 독자들이 하나씩 포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감정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이해와 분노, 공감과 슬픔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이 책은 마치 ‘기억을 가진 유령들’처럼 잊히고 지워진 존재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아이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인지, 혹은 우리 내면의 일부인지조차 모호하게 만들며, 독자는 결국 자신 안의 ‘아이’를 마주하게 됩니다. 슬픔을 감추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소설은 더 깊게 박히는 법입니다.
‘진실’이란 무엇일까… 끝내 마주한 상처의 자리에서
『이중『이 중 하나는 거짓말』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독자는 의문과 먹먹함, 그리고 이상한 위로를 함께 느낍니다. 과연 이 이야기 속에서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하나’가 아니라 사실 모두가 조금씩 진실이자 거짓은 아니었을까. 김애란 작가는 독자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불완전한 상태를 인정하게 만듭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서사’보다 ‘심리’에 집중합니다. 줄거리의 반전이나 사건의 전개보다는, 한 사람의 내면에 고인 감정의 무게와 그 언저리를 천천히 훑어가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단숨에 읽기보다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곱씹으며 읽게 되고, 때로는 멈춰서 문장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는 김애란이 가진 문장의 힘이자, 이 소설이 가진 내밀한 매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개발 논의가 이뤄지며 더욱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BTS의 RM이 김애란 작가의 단편들을 SNS에서 언급하면서, 젊은 세대 독자들 사이에서 김애란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장편은 그런 새로운 독자층에게도 김애란만의 ‘정적 속의 폭풍’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은 제목처럼 한 줄기의 진실을 좇는 여정이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흔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입니다. 그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어깨에 작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도 절실한지,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