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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인간 실격|나는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가

by theonecatshow 202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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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책 리뷰

다자이 오사무,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자화상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은 참 묘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책의 제목은, 마치 누군가가 우리 삶에 도장을 찍듯 단정지은 선언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 앞에서 우리는, 문득 멈칫하게 된다. 나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는 걸까? 혹은 나는 이미, 나도 모르게 ‘인간 실격’을 선언해 버린 것은 아닐까?

『인간 실격』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으로, 그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이 소설을 쓴 이듬해, 연인과 함께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자, 자기 고백의 총체인 이 소설은, 주인공 요조의 삶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인간 내면의 고통과 분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요조는 세상의 규칙과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웃음과 익살로 외면해 버리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하는 듯하지만, 내면은 철저히 무너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감정을 눈치 보고, 자신을 숨기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으로서의 ‘진짜 감정’을 잃어간다. 그가 말하는 "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고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다자이는 요조의 내면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여준다. 그의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이것이다. "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버림받기도 전에 이미 느껴버렸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우리는 알 수 있다. 『인간 실격』은 단순한 우울한 소설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부서진 감정의 흔적들을 기록한 보고서**라는 것을.

이 책은 읽는 내내 무겁고 가라앉지만, 동시에 어떤 위로도 된다. 왜냐하면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끝까지 끌어안고 고백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가면’을 쓴 채 웃는 사람들, 그 안의 공허함

요조는 끊임없이 ‘연기’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유쾌한 척, 능청스러운 척, 상냥한 척을 한다. 하지만 그건 전부 위장이다.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은 적이 없었다." 그의 웃음은 방어막이었고, 관계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요조를 보며 묘하게 낯설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 나 또한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나를 꾸미고, 좋은 사람인 척, 여유로운 사람인 척, 다 괜찮은 사람인 척을 하고 살아가니까. 특히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서툰 우리 사회에서, 요조는 가장 현대적인 인물처럼 느껴진다.

책에서는 요조가 술, 여자, 예술, 자살 시도 등으로 끊임없이 현실에서 도망치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그는 인간관계 안에서 상처받고, 스스로의 무능함을 혐오하며, 끝내 ‘나는 인간 실격’이라는 절망의 선언에 도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절망 속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진실을 발견한다.

이 책이 주는 강렬함은 바로 그 ‘무너짐’에 있다. 요조는 점점 더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끝내 인간의 궤도에서 이탈한 존재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절규는 어느 누구보다도 깊고, 아프고, 진짜다.

그래서인지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우울한 사람만 읽는 책’이라고 오해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이 책은 우리 안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어주고,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이 곧 나에게도 ‘빛’이 있다는 증거임을 말해주는 책이다.

특히 요조가 세상과 점점 단절되어 가는 후반부는,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어디선가 나 역시도 공감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있다. 그 공감이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고요하게 가슴에 내려앉는다.

『인간 실격』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

 

『인간 실격』은 1948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수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단지 작가의 극적인 생애 때문일까요? 그보다는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살아갑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론 모순적이며, 관계 안에서 상처받고, 스스로를 잃어가기도 하죠. 그런 우리가 때로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를 묻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인간 실격』은 그 질문에 대해 가장 절실한 언어로 응답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요조의 절망은 곧 ‘우리의 절망’이 됩니다. 그리고 요조의 무너짐은 ‘우리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치환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책을 덮고 나면, 오히려 조용한 위로가 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쯤, ‘나도 인간 실격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실격』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실격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이 문장은 삶에 대한 강요가 아닌,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태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삶이 버겁고,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고, 가끔은 이유 없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 이 책을 꺼내어 조용히 읽어보세요.

『인간 실격』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어 있는 외침을 대변해 주는 작품이자, 가장 인간적인 고백으로, 우리를 다시 ‘살아 있는 존재’로 끌어올려주는 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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