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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상처 위에 새겨진 절망과 희망의 문장

by theonecatshow 2025. 6. 22.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책 리뷰

문학이 허락한 고백, 억압과 부끄러움 속에 피어난 감정의 언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한국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논쟁과 회자, 그리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 정현종 시인의 시가 아니다. 이 책은 장편소설로, 양귀자 작가의 이름 아래 1990년대 한국 문학계에 던져진 묵직한 파문이자 상처의 기록이다. 제목부터 압도적인 감정을 안기는 이 소설은 억압된 성, 금기시된 욕망, 그리고 여성의 내면을 극도로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다.

여기서 ‘금지된 것’은 단순한 육체적 관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 사랑을 선택할 자유, 혹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용기일 수 있다. 주인공 '선재'는 바로 그런 것들을 ‘소망’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평범한 아내이고, 엄마이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감춰진 깊은 결핍과 외로움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감정의 디테일이다. 선재는 외부 세계에서는 단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분노, 억압, 허기, 좌절, 그리고 타인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을 지닌다. 그녀의 시선과 독백은 마치 독자에게 편지를 쓰는 듯 솔직하고 날카롭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프고도 깊다.

이 소설은 여성이 살아가는 한국 사회, 그 안에서 요구받는 희생과 모성, 그리고 순결함의 이중잣대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을 던진다. 단지 하나의 불륜 이야기가 아니라, ‘왜 여성에게만 금기가 존재하는가?’라는 구조적 물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부끄러움 없이, 그러나 절제된 문체로 밀도 있게 풀어낸다.

‘사랑하고 싶었다. 아주 단순하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만의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무수한 여성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어쩌면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를, 감추고만 살아온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지워질 수 없는 여성 서사의 시작, 그리고 현재와의 연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1990년대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에 다시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여성의 욕망은 아직도 불편한 것으로 취급되고, 여성의 주체적 삶은 종종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선재가 선택한 금기는 결국 그녀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와의 관계, 집안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가부장제의 질서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삶의 생기’를 갈망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 오롯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소설은 선재의 고통을 보여주면서도 독자에게 어떤 해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과 시선, 미세한 갈등과 모순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방식은 요즘 SNS에서 회자되는 ‘서늘한 문장들’이 떠오르게 한다. 한 줄의 문장이 마음속을 꿰뚫는 경험.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이 필사하고 공유하는 작품이 되었다.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읽고 나서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은 내면의 응어리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스럽기만 한 경험이 아니라, 치유에 가까운 경험이다. "그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구나", "이런 말도 되는구나"라는 안도와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사랑, 외로움,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 남성 독자에게는 ‘내가 놓치고 있던 감정의 층위’를 발견하게 하고, 사회 전반에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잊히지 않는 문장들, 침묵을 문학으로 바꾸는 작가의 용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문장’이다. 양귀자 작가는 감정을 문장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짧은 문장 하나가 독자의 숨을 멎게 만들고, 그 문장이 다시 내 안의 과거와 상처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힘이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내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이 문장은 설명 대신 고백을 택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고백은 독자에게도 용기를 준다. 우리는 종종 자기감정을 정의하지 못해서 두려워하지만, 이 책은 그 감정 자체가 하나의 ‘존재’ 임을 말해준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가장 인간적인 표현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금지는 규범이고, 소망은 본능이다. 이 두 단어 사이의 긴장감은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며, 독자로 하여금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게 만든다.

작가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독자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소망하는 것은, 정말 내 것이었는가? 내가 지금 외면하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침묵에 소리를 주는 문학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우리 모두의 내면 어딘가에서 고요히, 그러나 강하게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