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스 뮤지엄의 브랜드 디렉터, 리에티 료의 ‘진짜 나’를 묻는 용기
『PHILOSOPHY BYO』는 런던베이스 뮤지엄에서 활동한 브랜드 디렉터 리네타 료(Rieta Ryoo)의 첫 번째 철학 에세이다. 무표정의 드로잉, 최소한의 흑백 디자인, 그리고 다소 엉뚱한 구성은 단번에 독자의 시선을 끈다. 이 책은 단지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스스로 ‘생각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 말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을 던진다. 타인에게 맞춰 살아가며 무뎌진 감각, 너무 완벽해지고 싶은 사회에서 '내려놓음'을 실천하는 방식, 자신의 어릴 적 모습부터 현재의 일상까지를 위트 있는 언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너답게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의 구성도 독특하다. 한 면에는 짧은 텍스트, 다른 면에는 손그림과 낙서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료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혼란스러웠던 순간, 자신을 위해 선택했던 고민과 방향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혹은 내 삶의 방식이 정말 나의 것인지 의문이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마치 작은 거울처럼 다가온다. 자기 계발서처럼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나다움’을 말한다.
특히 이 책은 런던의 크리에이티브 씬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한 저자의 시선에서 문화와 감각, 그리고 정체성을 바라본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과는 또 다른 시선이기에, 이방인의 감수성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진짜 나로 살아도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철학적으로, 감성적으로,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답하고 있는 책이다.
불안한 시대 속,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작은 혁명
『PHILOSOPHY BYO』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철학서도, 자서전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아주 작고 사소한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를테면 SNS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삶,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틀, 인간관계 속의 불편한 진실들까지. 료는 그런 고민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오히려 그 안에서 자유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나다.” 바로 그 문장이 이 책의 전부다.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타인의 기대를 저버릴까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남의 삶을 흉내 내기도 한다. 료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진짜 철학은 누군가에게 배워야 하는 ‘이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실천하는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그녀는 책 속에서 자신의 과거 실수나 불안정했던 순간들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런던 유학 중 길을 잃었던 밤’, ‘브랜드 디렉터가 되었지만 늘 부족하다고 느낀 자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 등은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안겨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잘난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진짜로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말의 철학적 무게를 말하다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시대에 익숙한 주제이지만, 『PHILOSOPHY BYO』는 그것을 단순한 감성적 언어가 아니라 철학적 깊이로 끌어올린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나로 사는 게 불편할까?”,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정말 내가 고른 걸까?”, “이 공간이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들은 당장 답을 찾기보다는, 우리 안에 작지만 강한 울림을 남긴다.
그녀의 메시지는 어찌 보면 요즘 말하는 ‘힙스터 철학’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내면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 비주류로서의 외로움, 창작자로서의 고뇌, 인간으로서의 불안함, 그리고 여성으로서 사회의 시선과 싸워야 했던 경험들이 유려하게 녹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 건, 료가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을 열었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된다. “아, 나도 나로 살아도 되겠구나.” 비슷한 생각을 했던 독자들은 아마도 이 책을 자신만의 철학 노트로 삼고 싶어질 것이다. 그녀가 추천하는 방식처럼, 각자의 일상에 맞는 질문들을 만들고, 생각을 기록하고, 나다움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진짜로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PHILOSOPHY BYO』는 철학서이자 일기장이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시작점이다.